Running: Cheaper Than Thera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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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마라톤클럽-
42.195km풀코스 200회/100회 달성하는
권수근/장미경 부부회원위해 축하동반주 기획!
-오는 10월 21일 경주국제마라톤 대회에서

구미마라톤클럽(회장 우기원)은 오는 10월 21일 경주국제마라톤 대회에서 구미마라톤클럽 권수근 장미경 부부회원의 42.195km 풀코스 각 200회, 100회 달성 기념 축하이벤트 개최키로 하였다.
이벤트는 이벤트 등배너를 전회원이 부착하고 도착1키로미터 전부터는 함께 동반주 하는 방안을 기획하고 있다.
권수근 장미경회원 부부는 1999년 구미마라톤클럽을 창립하여 초대회장을 맡으며 현재 정회원 120명의 클럽으로 성장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다음은 권수근 회원이 직접 기록한
‘마라톤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10가지’ 의 본문이다.

‘첫 공식마라톤대회 참가는 1999년 3월 경주 동아마라톤대회’

○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1997년 9월 첫째주 토요일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였다. 첫 공식마라톤대회 참가는 1999년 3월 경주 동아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로 입문하였다. 27km지점에서 갑자기 멈춰지길래 신발에 껌이 붙은 줄 알고 신발 밑창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후에 알았지만 이것이 마라톤 벽인 줄 훗날 알게 된다. 이때 첫 풀코스 기록은 4시간 24분 이었다

‘부인 장미경씨 응원해주다가 행사장 분위기좋아 99년도 입문’

○ 초창기 마라톤대회는 거의 없었던 시절에 진주 경상대학교의 전차수교수라는 분이 사비를 털어 1999년 5월을 시작으로 매월 첫째주 일요일에 참가비 없는 대회를 경상대학교 내에서 개최 하였다. 나는 그해 6월에 처음 진주경상대학교 마라톤대회를 참가하였다. 집사람인 장미경씨는 그동안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으로서만 마라톤대회장에 왔는데 대회장의 분위기도 시골마을의 축제분위기에 매료되어 경상대학교에서 1999년 7월에 5km로 입문하게 된다. 한편 현장에서의 기록증을 바로 배부해주었는데 마라톤기록의 현장배부는 경상대학교의 전차수교수가 효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또한 전차수교수는 달리기에 임하면서 외치는 구호를 “Fighting!(싸우자!)”대신 “힘!”이라는 구호를 외치는게 더 힘을 낸다고 하여 “힘!”이라는 구호를 퍼뜨린 장본이기도 하다.

‘1999년 9월 구미마라톤클럽 결성!’

○ 1999년 9월 구미마라톤클럽 결성과 함께 초대 구미마라톤클럽회장이 되었으나 구미마라톤클럽이라는 명칭을 다른 곳에서도 사용하려고 하여 한동안 시끄러웠다. 훗날 에이스마라톤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분가해갔으나 이 클럽의 회장을 구미마라톤클럽의 고문 역활을 맡도록 하면서 힘들게 마무리 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 1999년 10월 춘천조선일보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3시간 4분 전체 57위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달성하여 네티즌 마라톤계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고 조선일보의 주용태 기자의 초청으로 일반 달림이를 대상으로 달리기 특강도 실시하게 된다.

○ 1999년 12월 국토종단이어달리기에서 구미마라톤클럽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기억을 갖고 있다. 이 당시에 네티즌마라톤(이하 ‘넷마’ )클럽이라는 실체가 없는 전국적인 모임이었다. 나는 이 분들과 자주 전국적인 모임을 갖곤 했는데 그때 나온 안건이 순수한 아마추어 달림이들 끼리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한민족 통일기원 국토종단 이어달리기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넷마클럽’ 이란 실체가 없었기 때문에 각 지역의 원활한 교통정리를 위해 경찰서에 협조공문을 보내야 했는데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어려움을 도맡아 추진했던 분이 윤석기 라는 ‘넷마’ 회원이다. 그러면서 각 지역의 대표되는 마라톤클럽이 구간 운영계획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김천,옥천 등에는 마라톤 클럽이 결성되지 않아 구마클이 담당해야 하는 구간이 구미에서 대전까지 약 110km로서 가장 긴구간이었다. 이를 위해 하루는 회사를 조퇴하고 박영수사무국장과 승용차로 답사하면서 일일이 구간을 상세히 적어 운영계획을 올려보는 것이 계기가 되어 이 계획을 전국 주요 넷마 회원들이 참고하여 일사 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다른 구간은 길어야 50km 내외라서 하루만에 달릴 수 있는 구간인 반면 우리는 토요일 일요일 2일간을 달려야 했다. 이를 빠르게 커버할 수 있는 주자는 창립멤버인 박영도씨와 나 밖에 없어 전 구간을 두사람이 쉼없이 달린 기억이 난다.

‘2000년 9월 서울마라톤클럽, 첫 100km에 참가 9시간 17분 기록’

○ 2000년 9월 서울마라톤클럽(당시 박영석회장)이 처음으로 한강변에 하프의 3배인 63.3km 울트라마라톤대회를 도입하였다. 처음 울트라마라톤 63.3km를 5시간 7분으로 완주하여 전체 5위를 하였다. 그 후 2001년에는 서울마라톤클럽이 63.3km와 100km 두 종류의 울트라마라톤대회를 개최하였고 이때 나는 100km에 참가하여 9시간 17분의 기록으로 골인하였다. 100km를 완주하여 피니쉬라인을 밟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거짓말처럼 딱 한방울이 튀어나오는 감동을 느꼈다.

‘부인 장미경씨 2000년 춘천조선일보마라톤대회 첫풀코스 Sub-5 달성!’

○ 장미경씨의 첫 풀코스 도전은 2000년 10월 춘천조선일보마라톤대회에서 4시간 46분으로 Sub-5를 달성하게 되고 나는 3시간 10분으로 골인하였다. 2017년까지 기준으로 장미경씨는 총 11회를, 나는 총 16회를 완주하여 춘천조선일보마라톤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 있다. 2018년도인 올해도 참가신청을 한 상태라 이변이 없는한 장미경씨는 12회 나는 17회 참석하는 셈이된다. 앞으로도 20회를 넘어 30회로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수 있을려나!

‘2002년 3월 서울동아마라톤 Sub-3 도전, 3:02:54 허탈과 패배감 엄습’

○ 2002년 3월 서울동아마라톤에서 Sub-3에 도전해보려고 대회전 일주일 간 고통스런 식이요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주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을 보니 아! 원망스럽게도 나의 디지털 손목시계는 3:00:00을 표시하고 있는게 아닌가! 모든게 허사로고, 그저 인생에 패배자인듯 달리기를 통해서 그렇게 큰 좌절감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400m트랙을 한바퀴 다돌고 피니쉬라인을 밟으니 무정하게 나의 손목시계는 아랑곳없이 3:02:54를 가르키고 있었다. 대회를 다 끝내고나서 오는 허탈감과 패배감이 엄습하면서 함께 찾아오는 달갑지 않는 손님인 장단지에 쥐까지 나서 보조경기장의 마른 잔디밭에서 떼굴떼굴 굴렀던 적이 있었다.

‘2002년 4월 경주동아마라톤, 페메 덕분에 2시간 58분 10위!’

○ 2002년 3월 동아마라톤에서 Sub-3실패의 좌절감에 방황하면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않은 채 일주일 후 경주 벚꽃마라톤을 참가하였다. 이때 구마클의 전설적인 훈련감독이었던 정석근 코치가 Sub-3 페이스메이커로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터라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실력이면 Sub-3가 충분히 가능하다며 격려하여 어쩔 수 없이 내심 하프정도만 정석근 코치를 뒤따라가다 중도에서 Sub-3도전을 포기한다는 속셈으로 함께 달렸다. 처음에 10여명정도가 정코치를 에워싸고 달려갔다.

30km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주자는 보이지 않고 이미 동아에서 Sub-3주자 반열에 오른 김영갑씨와 나만 달리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데 35km구간에 와서는 무정하게 영갑씨가 나를 정석근 코치에게 인계하듯 남겨두고 치고 나가버린다. 동아마라톤대회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들던 영갑씨가 한창 물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중도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과 함께 페이스 메이커 하는 정코치에 포기하겠다고 하니 계속 응원을 해준다. 해서 40km지점에 이르러 손목시계를 보니 2시간 50분을 가르킨다. 그 순간 내몸에는 전율이 오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의 언덕길이 내리막길로 바뀌는 지점이었기 때문이고 1km를 4분초반대로 달리는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Sub-3는 나에게 현실로 다가오면서 남은 2.195km를 단숨에 달렸다. 기록은 2시간 58분이었고 영갑씨가 9위였고 내가 10위였다. 이때의 기분이란 천지를 다 얻은 듯 하였다. 내 경험으로 지금 생각해보니 일반 마스터스에게 있어서 Sub-3란 Sub-3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Su-3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Sub-3를 할 수 있는 대회를 하늘이 점지해 주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동아 코스보다 경주벚꽃 코스가 훨씬 힘든 코스였으니 말이다.

‘영동울트라에서 1회,2회 그리고 10회 완주자 비석에 내이름 석자가 새겨져 있다.’

○ 2016년 10월 군위하프 단체대항전을 깃점으로 2017년 10월 춘천대회 2017년 11월 진해군항마라톤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마라톤의 슬럼프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군위대회는 토요일에 실시하는 대회인데 구마클에서 김상원씨의 강력함(?)으로 백연숙씨가 총감독을하고 남자선수는 김경남,김대중,김상원,권수근 여자선수로는 박강림씨가 한팀이되어 군위에서 단체전 하프를 있는 힘 다해 1시간 32분에 뛰고 바로 영동울트라마라톤 101km를 참가하기위해 점심도 거른체 차를 몰고 영동으로 달려갔다 도착하니 출발 15분 전이다. 부랴부랴 이복규 금오산감독님이 받아놓은 배번호를 급히 받아 부착하고 달려가니 10km를 못가서 배도 고프고 발병이 나기 시작한다. 중간에 허성구씨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먹을 것 동냥이 없었더라면 험한 도마령도 못넘고 중도에 포기하였을 것이다.

특히 이복규감독의 정성어린 도움으로 75km지점까지 왔다가 “이감독님 이라도 완주하라고 이번 경기를 접겠다” 고 선언하니 이감독님의 애닯아 하던 모습이 지금도 손에 잡힐 정도로 눈에 선하다. 마치 눈물을 쏙 빼게 하는 신파극의 한 장면이랄까? 빨리 앞으로 가라고 손을 내젓는 나를 몇 번이고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면서 먼동이 트기 전의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80kmCP에 도착하니 나를 포함한 후미 주자는 컷오프타임 16시간이 불가능할거라고 한다. 택시도 없는 마당에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90kmCP인 노근리 역사의 현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자원봉사자가 하는 말이 내까지는 16시간 안에 갈 수 있을 거라 용기를 북돋워 준다. 이제 남은 10km! 걷다가 뛰다가 끌다가 가드레일을 붙잡고 일어섰다 앉았다 겨우겨우해서 도착하니 15시간 57분이란다.

이렇게해서 영동울트라 주최측에서 마련해주는 10회째 완주자비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영동울트라에서 1회,2회 그리고 10회 완주자비석에 내이름 석자가 새겨져 있다. 이 이후 몸은 엄청 망가져 버리고 2017년 군위대회 하프는 7km지점에서 포기하였고 2017년 10월 춘천조선마라톤에서 또 장단지 부상으로 풀코스 3시간 57분으로 Sub-4를 겨우하였다. 연이어 2017년 11월 진해군항하프대회에서는 2시간 7분이라는 경이로운(?)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모든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말입니다. 2017년 11월에 개최된 부산다대포 풀코스에서 3시간 38분으로 완주하였고 2018년 3월 서울동아에서 3시간29분으로 완주를 하게된다. 또한 218년 7월 영덕로하스에서 3시간40분, 얼마전 8월28일 영동포도 풀코스에서 3시간35분 기록으로 완주 하였다. 이제부터 몸조심하여 또다시 10월13일 군위하프, 10월21일 경주동아 풀코스, 10월28일 춘천조선 풀코스를 ‘낭창여사(?)’ 장미경씨와 완주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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